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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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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죠지 마이클, 그리고 앤드류 리즐리. 짧은 기간 이토록 선굵은 활동을 펼쳤던 듀오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공식적인 만 4년의 활동 동안 3장의 앨범과 10여개가 넘는 탑 탠 싱글을 남긴 웸. 이들의 전설은 수년이 지난 현재에도 변함없이 유효하다. 1963년 동갑나기인 죠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13살 때 처음 만나 10년 이상 동고동락 해온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둘도없는 음악 파트너이다.

이들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앤드류의 형제들과 스카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했고 훗날 1,2집에 수록될 수많은 곡들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여러 부분에 걸쳐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발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수년의 시간을 흘려보낸 82년, 본격적인 프로 뮤지션이 되고자 20파운드를 투자해 데모 테입을 제작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CBS레코드와 계약, 4장의 싱글과 83년 7웸 대망의 데뷔 앨범 '판타스틱'을 발표하게 된다.

죠지 마이클과 스티브 브라운이 공동 프로듀서한 이 앨범은 놀랍게도 발매와 동시에 1위로 직행, 웸은 영국 댄스 음악의 최강자이자 아이돌 스타로 단숨에 뛰어오른다. 84년 11웸 발표된 2집 ' Make It Big ' 은 영국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은 물론 솔로 작품 ' Careless Whisper' 까지 선보인 죠지 마이클은 단숨에 이 시대에 가장 잘 나가는 싱어송 라이터로 떠 오른다. 싱글과 앨범의 연이은 성공으로 85년 2웸 브릿 어워드의 베스트 브리티쉬 그룹으로 선정된 웸은 여세를 몰아 빌보드 앨범과 싱글 챠트를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4웸에는 서방계 팝 밴드론 최초로 죽의 장막 중국을 방문하여 공연을 갖기도 했으며 그 기록들은 '프리덤'의 뮤직비디오에 담은 바 있다. 같은해 12웸 조지 마이클은 색다른 기록 한가지를 세우게 된다. 웸의 새로운 싱글 'I'm Your Man' 크리스마스만 되면 울려퍼지는 '라스트 크리스마스'와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 백 보컬로 참여한 엘튼 존의 '니키타' 등 그의 목소리가 담긴 네곡이 싱글 차트 상위권에 랭크된 것. 영국 팀으로는 드물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4개 부분을 석권하며 쾌적의 86년을 맞이한 웸이었지만 이들의 주변에선 괴이한 소문들이 하나 둘씩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팀이 해체할 것' '조지 마이클이 솔로로 나서게 될것' 등등.. 그러한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조지 마이클은 'Carless Whisper' 에 이은 두 번째 솔로 싱글 'A Different Corner' 를 발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의 해체를 알리는 충격의 매스컴 발표가 있게 된다.

86년 8웸 웸은 3번째 정규 앨범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을 끝으로 공식적인 모든 활동을 마감한다. 학창시절 친구로 구성된 듀오였던 탓에 누구도 팀웍을 의심한바 없었지만 결국 음악적인 견해 차이와 내적 불균형이 원인이 되어 5년간의 화려했던 활동을 추억으로 접어두고, 86년 충격적인 해체 선언과 갈라서기를 시작하게 된 웸! 아주 오랜만에 새롭게 생각해보는 웸의 존재, 이들은 이제 추억이 아니라 전설에 가깝다. 웸은 없지만 조지마이클은 아직 팝계에 남아있다,, 베스트앨범이 2장이 나왔을정도로 그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도 언제 사라질진 아무도 모른다..20여년의 세웸이 흐른뒤에도 지금까지 이어온 역사를 이어가기 바랄뿐이다.

2.Wham은 1981년 George Michael(본명: Georgios Kyrriacos Panayiotou, 1963년 6/25, London)과 Andrew Ridgeley(1963년 1/26, Surrey, England)에 의해서 결성되었다. 런던 교외의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던 이들은 79년 The Executive라는 밴드에서 함께 활동하며 음악에의 꿈을 키워 나간다. 하지만 곧 밴드는 해체되었고, 뜻을 함께한 George와 Andrew는 작사/작곡에 박차를 가하며, 세계적 밴드로의 도약을 준비하게 된다.

2년 여의 준비 기간을 가진 이들은 81년 ‘Wham!’(‘쾅!’ 정도로 해석되는 의성어로 그림에서 힌트를 얻어 지었다. 자신들 둘이 만나면 이런 소리가 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도 한다.)이라는 이름을 걸고 인디 레이블인 ‘Innervision’을 통해 데뷔 싱글 ‘Wham Rap!’을 발표한다. 첫 싱글의 성적은 기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발표한 두 번째 싱글 ‘Young Guns (Go for It)’이 차트 3위의 오르면서 이들은 세계 시장에 자신들의 이름을 당당히 알리기 시작한다.

사실 이들은 음악성에 대해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아야 할 틴에이지 댄스 듀오였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도 나이트클럽에서 함께 춤을 추다가 친해지게 된 데에서 유래했고, 음악 자체도 디스코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70년대 후반부터 이어오는 젊은이들의 댄스 음악에 불과했다. 또한 이들은 음악으로 어필하는 것 만큼이나 외모나 행동을 통해 대중을 사로잡는 아이돌 스타로서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돌 스타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만들며 이들의 대중적인 성공에 크게 기여한 이는 Andrew였다.

하지만 Wham!이 지니는 가치는 댄스 아이돌 스타로서만 다루어질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바로 George Michael이라는 천재 뮤지션이 Wham!에서 그 음악적 역량을 키워 나갔기 때문이다. Wham!에서 이들이 보여 준 음악은 바로 George Michael의 초기 음악 행보였다. 그룹 내의 모든 작사/작곡 심지어는 프로듀싱까지 George 혼자서 해 내었으며,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통해 쏟아져 나온 작품들은 10대, 또는 10대를 갓 넘긴 나이에 만들어 낸 것임에도 어느 곡들에도 뒤지지 않을 뛰어난 감각이 묻어 있는 것들이었다. 영국 천재 뮤지션들의 계보를 잇는 멜로디 천재이자, 최고의 보컬, 무대에서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George Michael의 역량은 이후 이들의 큰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게 된다.

이들의 음악은 백인들의 음악이면서도 디스코, 소울과 같은 흑인적 느낌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당시 음악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Michael Jackson의 경우처럼 흑,백간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함에 따라 흑인, 백인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음악이 탄생하고, 그를 통해 팝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얻어 내었던 것이다.

그 가능성을 인정 받고 Columbia와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83년 데뷔 앨범 「 Fantastic 」을 발표한다. 이미 싱글을 통해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놓은 덕분에 틴아이돌의 데뷔 앨범은 바로 정상을 향하고, ‘Bad Boys’, ‘Club Tropicana’, ‘Love Machine’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84년 이들은 두 번째 앨범 「 Make It Big 」을 발표하고 데뷔 앨범의 성공을 무색하게 만든다. 「 Make It Big 」의 성공은 정말 폭발적이었다. 이들의 대표 앨범으로 아직까지도 많은 곡들이 사랑 받고 있는 이 앨범에서는 경쾌한 댄스 넘버 ‘Wake Me Up Before You Go Go’가 영, 미 차트 정상을 모두 석권했고, 이후 국내에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Careless Whisper’가 연이어 정상을 차지했으며, ‘Everything She Wants’까지 정상에 오른다. 또한 앨범 수록 곡인 ‘Freedom’도 Top10에 진입했으며, 싱글로 발매된 ‘Last Christmas’ 역시 차트 2위의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이 앨범의 성공은 이들에게 영원히 기억에 남을 또 하나의 영광을 안겨 주게 된다. 이들은 냉전 상황이던 85년 중국 베이징에서 공연을 펼치는 영예를 누리게 된 것이었다. Wham!은 이 공연으로 ‘중국에서 공연한 최초의 서방 그룹’으로 영원히 기록되게 된다.

하지만 이 두 멤버가 그룹이라는 이름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해 지고 있었다.. Wham!은 George Michael의 밴드인 것처럼 인식 되어졌고, George 역시 다른 유명 뮤지션들과 계속 작업하며 그룹이 자신에게 주는 부담과 거추장스러움을 걷어 내려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Elton John과 함께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불러 크게 히트시키는 등 독자적인 행동을 보였던 George는 86년 결국 팀을 해체하게 된다. 더 이상 아이돌 밴드이기를 거부했던 George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이들은 공식 해체 선언 이후 ‘The Final’이라는 타이틀을 건 마지막 공연을 팬들에게 선사했는데 7만 2천 명이 공연에 모여들며 이들이 누렸던 대중의 큰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룹 해체 후 두 멤버는 솔로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George는 「 Faith 」의 대성공을 통해 최정상의 솔로 뮤지션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하지만 Andrew는 「 Son of Albert 」를 크게 성공시키지 못했고,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

3.조지 마이클이라는 걸출한 팝 스타를 배출한 팝 듀오 웸(Wham!)은 80년대 팝 역사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중요한 그룹이다. 소울 음악과 결합된 즐겁고 흥겨운 팝 댄스를 들려줬던 이들은 80년대 특유의 '가벼움'을 관통함으로써 80년대 팝의 중흥기를 이끌었으며, 수많은 여성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또한 이들은 사실상 90년대에 들어 맹위를 떨친 보이밴드의 효시였다. 잘 생긴 외모와 수준급 가창력, 거기에 경쾌한 댄스 팝과 매혹적인 발라드 등 현 보이밴드의 전형이랄 수 있는 특질을 이미 80년대 초반에 확립해, 전부 보여줬기 때문이다.

1981년, 웸은 '나이트클럽 광'이었던 조지 마이클과 그의 친구 앤드류 리즐리에 의해 탄생되었다. 조지 마이클이 작곡과 작사, 보컬, 제작 등 음악에 관한 한 모든 걸 담당했고, 앤드류 리즐리는 그룹의 스타일과 이미지, 비주얼 등 외적인 측면에만 힘을 기울였다. 그 때문에 팀 해산할 때까지 자주 앤드류 리즐리의 역할 부재론이 거론되기도 했다(그렇지만 그룹의 방향성은 앤드류 리즐리가 결정했던 만큼 역할이 아주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꽝!'이란 의미의 그룹이름과 이미지는 앤디 워홀과 더불어 팝 아트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주로 미국의 대중적인 만화를 주제로 매스미디어를 묘사한 바 있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에서 따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이 둘은 1979년, 이그제큐티브(Executive)라는 스카 밴드활동을 하면서 음악여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밴드가 해산되고 향후 약 2년간 작곡과 홈메이킹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는 등 수련과정에 들어간다. 당시 작곡한 곡 중에는 나중 메가히트를 기록하는 'Careless whisper'와 'Club tropicana'가 있었다.

몇 번의 오디션 끝에 1982년, 댄스 레이블 <이너비전>(Innervision)과 계약을 체결한 웸은 데뷔싱글 'Wham rap!'을 발표했지만 영국차트 100위권에도 못 오르는 실패를 맛봤다. 그러나 그 해 10웸에 내놓은 두 번째 싱글 'Young guns(go for it)'은 BBC 방송국의 프로그램 <탑 오브 더 팝스>(TOTP)에서의 인상적인 댄스 공연으로 차트 3위로 도약했다.

1983년 6웸 9일, 팝 댄스로 가득 찬 이들의 데뷔앨범 <Fantastic>이 발매되었고, 이 앨범은 곧장 영국차트 1위를 기록했다. 한편 조지 마이클은 이미 이때부터 독자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한다. 같은 해 8웸 그는 미국의 머슬 쇼울스(Muscle Shoals) 스튜디오에서 전설적인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와 함께 'Careless whisper'를 녹음했다(하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고 나중에 런던에서 재녹음되어 나중에 출시된다).

1984년부터 웸의 센세이션이 일어났고, 동시에 그들의 히트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침대 맡에 적어놓았던 앤드류 리즐리의 노트에서 영감을 얻어 조지 마이클이 만든 'Wake me up before you go go'는 영국차트는 물론 미국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수년간 공력을 들인 발라드 'Careless whisper'도 3주간 영국차트 넘버원을 지켰다. 이듬해에는 미국차트에서도 역시 3주간 1위를 기록했다. 조지 마이클이 자신의 부모님께 바친 이 싱글의 미국판 크레딧에는 '조지 마이클이 피처링한 웸의 곡'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앤드류 리즐리가 두 번째 앨범을 구상하는 동안, 조지 마이클은 다른 음악인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했고, 엘튼 존과의 파트너십도 쌓기 시작했다. 12웸에는 밴드 에이드의 난민 구호곡 'Do they know it's christmas time?' 녹음에도 참여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곡 때문에 그들의 크리스마스송 'Last christmas'가 차트 2위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이듬해인 1985년 3웸에는 서포모어 앨범 <Make It Big>이 출시되었고, 그 앨범은 제목대로 미국에서만 5백만 장이 팔리는 '빅 히트'를 기록했다. 당해 4웸 웸은 서구 팝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주인공이 되었다. 그들은 1만여명이 운집한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공연함으로써 '중국에서 공연한 최초의 서방 그룹'으로 기록되었다.

계속해서 조지 마이클은 라이브 에이드 행사에서 엘튼 존과 듀엣으로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불렀고, 또 엘튼 존의 싱글 'Nikita'에서 백업보컬을 담당하는 등 확실하게 솔로활동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결국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여전히 친한 사이였지만 서로를 위해 1986년 웸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1986년 4웸 발매된 조지 마이클의 두 번째 솔로 싱글 'A different corner'는 공식적으로 밴드의 종말을 알리는 곡이었다. 같은 해 6웸 윔블던 스타디움에 모인 7만2천명의 관객 앞에서 행한 마지막 콘서트 'The Final'을 끝으로 웸은 해산되었다.

웸 이후 조지 마이클은 <Faith>를 시작으로 솔로가수로서 놀랄만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앤드류 리즐리는 <Son Of Albert>를 발표했지만 'Shake'라는 희미한 히트곡만 남겼을 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웸의 음악을 담당했던 조지 마이클이 성공을 거두고, 음악적으로는 아무런 역할도 못했던 앤드류 리즐리가 실패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지만 추억 속에 남아있던 앤드류 리즐리의 아름다운 매력이 솔로활동의 참담한 실패로 그나마 퇴색해버린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어쨌거나 웸은 80년대를 살아왔던 음악팬들에게는 아련한 기억으로, 또 아쉬움으로 존재하는 그런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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