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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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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년대 중반, 적어도 팝을 즐기는 젊은이라면 한번쯤 'Take on Me'라는 아하(A-Ha)의 히트곡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광경, 완벽한 선율의 음악을 들었을 때 일반적으로 내지르는 국제적인 감탄사를 본의 아니게 내뱉게 만드는 노르웨이 출신 그룹 아하는 수려한 용모와 감미로운 목소리의 보컬리스트 모튼 해킷(Morten Harket), 터프한 이미지의 맥스 푸루홀멘(Mags Furholmen, keyboard), 멤버의 막내 폴 왁타(Paul Waaktaar-Savoy, guitar)로 구성된 3인조 록 밴드이다.

세계적인 팝스타를 꿈꾸며 본거지인 노르웨이를 떠나 82년 영국으로 건너간 아하는, 그들의 음악을 런던의 클럽가에서 선보이게 된다. 데모 테입을 들고 여러 레코드사를 거치다 84년 마침내 워너 브라더스(Waner Brothers)와 계약을 맺게 되고, 85년에 데뷔 앨범 [Hunting High and Low]로 전 세계 팝 팬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싱글 'Take on Me'가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함으로써 이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했으며, 마이클 잭슨의 비디오를 제작한 바 있는 스티브 배런에 의해 애니메이션 기법 -코믹 북 스타일의 펜슬(comic book-style pencil drawings)을 바탕- 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는 초기 MTV시대에 기념할만한 작품으로 MTV 시상식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7개 부문을 석권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어 발표한 [Scoundrel Days](86)의 'I've Been Losing You'도 전작에 못지 않은 히트 를 기록함과 동시에 성공적인 미국 투어로 이어져 아하는 명실 공히 듀란 듀란(Duran Duran)이나 컬쳐 클럽(Culture Club)같은 10대들의 우상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들은 87년 영화 007시리즈 [Living Daylight]의 사운드 트랙인 [Manhattan Skyline]을 포함해 3장의 음반을 더 출반한 후, 90년 초 그룹으로서의 활동을 접는다. 이후 사보이는 뉴욕을 기반으로 한 4인조 록밴드 사보이(Savoy)를 조직하였으며, 모튼도 솔로 앨범을 내는 등 99년에 80년대 복고 바람에 편승해 재결합하기까지 각자 음악 활동을 하였다. 최근 소식(99년 6월)에 의하면 아하는 9월쯤 싱글을 출반해 11월에는 새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밝혀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애착과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더 이상 10대들의 우상도 아니며 중반의 길을 걷고 있는 아하이지만, 환상적이고 감미로운 선율로 80년대 중반을 풍미했던 이들은 올드 팝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트로이카로 자리잡고 있다.

1982

노르웨이에서 결성.
무작정 런던으로 향하다.그러나 좌절의 연속..

1983
1월, demo 테잎들고 다시 런던에 가다.

1984
12월, Waner brothers 사와 계약.
Tony mansfield 이 producing한 첫 single 를 유럽전역에 발매하였으나 본국인 노르웨이에서만 차트 10위를 기록하였을 뿐 다른 곳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다.

1985
가 Alan tarney의 재produciing과 Steve barren(Michael Jackson의 'Billie Jean'제작자)의 환상적인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에 힘입어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영국 차트 2위 포함 세계 9개국에서 넘버원 기록하는 등 전세계 10대의 우상으로 등극하다. 데뷔앨범 Hunting high and low 발매, 빌보드 앨범 차트 15위. 영국 앨범 차트 2위 기록 두 번째 싱글 The sun always shines on TV 영국싱글차트 NO.1 기록

1986
MTV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8개부문 후보에 올라 7개 부문 석권 (최우수 비디오상,최우수 감독상, 혁신적인 비디오상,최우수 컨셉트비디오상,특수효과상,최우수신인상,최우수편집상)수상, 그래미 어워즈 신인상(BEST NEW ARTIST)에 노미네이트, 2집 Scounderel days 발표, 영국 앨범 차트 2위, 빌보드 앨범 차트 74위 기록, 6월 3일 아하의 첫 월드 투어 호주에서 시작. 10월 10일 미국 공연.

1987
007 제임스 본드의 의 주제곡 을 John barry와 공동작업 및 발표,영국싱글차트 5위진출

1988
세 번째 앨범 발표, 영국 앨범차트 2위, 빌보드 앨범차트 148위 기록

1990
네 번째 앨범 발표, 영국앨범 차트 12위 기록,
보다 완숙된 음악성으로 비평가들로부터 아하 최고의 앨범이라는 찬사를 받으나 상업성이 떨어져 팬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지는 못함. 애벌리브라더스의을 remake곡 수록..

1991
5번째 앨범인 베스트 앨범 발표 신곡 Move to memphis 수록,영국 차트 12위 기록

1993
6번째 앨범 발표, 영국 앨범차트 17위 기록.

1994
릴레하메르 동계 올림픽 주제가 싱글 발표, 영국 싱글차트 27위 기록 사실상 해체되다.
Morten은 solo활동에 주력하고, Paul은 그룹 를 결성하였으며, Magne는 화가로 데뷔.
베이찡에서 파리를 순회하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화가로서의 국제적 명성을 얻다.

1998
12월 11일 노벨 평화상 시상식 콘서트 공연,와 당시 이 시상식을 위해 준비했던 연주함. 이를 계기로 재결성이 예측되기도...

1999
Waner broders와 2장의 앨범 계약 체결,

2000
7월 통산 7번째 앨범 발표

2001
12월 11일 100회 노벨평화상 콘서트에서 와 를 연주.

2002
4월 2일 single 발표
4월 29일 통산 8번째 앨범 발표

2.Take On Me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그룹 아하는 팝 록, 뉴 웨이브 장르의 음악을 하는 그룹이다.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또는 새로운 것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A-Ha!라고 한다. 이 발음은 세계 공통의 감탄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그룹명을 따온 A-Ha는 바이킹의 후예이자, 눈이 일년동안 덮혀있는 아름다운 나라 노르웨이 출신의 3인조 남성 트리오이며 1981년에 결성되었다.

어린시절에 엘리스 프레슬리(Elvis Presly)를 좋아했고 젋은 나이인 24세에 세상과 이별한 지미 핸드릭스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는 폴(Paul Waaktaar)과, 비틀스(Beatles)의 노래를 좋아했던 맥스(Mags Furuholmen)가 오늘날 그룹 아하가 있게 한 장본인이다. 이들은 노르웨이에서 그룹 활동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꿈을 실현시켜 나간다. 그들이 몸담고 활약하던 그룹 브리치스(Britches)는 노르웨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무대에서 인정 받는 것이 포부였던 이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무대를 영국으로 옮긴다. 처음에 계획 했던 대로 데모 테입을 만들어 여기 저기 레코드 회사들을 찾아 다녔다. 큰 회사들을 거치고 자그마한 PD메이커에 이르기까지 손에 물집이 들 정도로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결과는 한심스러운 정도였다. 결국 자신들이 영국의 팝시장을 만만하게 보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노르웨이의 고향 오슬로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던 이들은 재능있는 보컬리스트 모튼 하켓(Morten Harket)을 설득 끝에 영입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열성적인 연습과 준비에 들어간다. 자신들을 새롭게 정비한 '아하'는 다시금 영국의 팝시장에 모습을 나타냈고 예전에 하던 것처럼 데모 테입을 싸들고 레코드사의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역시 예전처럼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좌절과 실의로 얼룩진 가슴을 달래며 입술을 깨물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기에 맥스(Mags)가 본국을 오가며 이들의 활동자금을 조달했다.  드디어 그들의 행운은 찾아오고 1984년 존 팻클리프(John Patcliff)를 만나면서 이들은 성공가도를 걷기 시작한다. 존의 소개로 EMI레코드에서 데뷔 앨범 (Hunting High & Low)를 그해 가을에 완성하였다. 이 앨범에서 커트된 싱글 Take on me는 노르웨이에서만 10위 안에 들었을 뿐 영국과 미국 시장에서는 반응이 없었지만 이들의 독톡한 뮤직비디오(3D애니매이션을 기법으로 제작되어 아주 환상적인 화면을 연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그 당시에는 파격에 가까웠음)가 소개되면서 영국을 출발해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세계의 팝시장에 소개되어, 순식간에 히트되었다.  
마이클 잭스(Michael Jackson)의 비디오를 제작한 바 있는 스티브 배런에 의해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제작된 이 노래는 미국의 MTV 시상식에서 8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7개 부문을 석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이 노래는 세계적으로 골드를 기록해 그룹 '아하'를 당대 최고의 그룹으로 만들어 주었다.  

여기에 가속을 붙여 만든 앨범 (Scondrel Days)에서 커트된 싱글 I've been losing you도 전작에 못지 않게 팬들을 사로 잡았다. 트로이카 아하는 계속해서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1980년대 중반에 전세계를 그들 그룹의 신드롬에 빠뜨리며 엄청난 인기를 끌어나간다. 1987년 초에 이르러 잠깐의 휴식기를 보내던 그들은 영화 007시리즈의 Living Daylight의 사운드트랙인 (Manhattan Skyline)를 발표해 꾸준한 인기와 사랑을 받았고, Crying Wolf등 좋은 영화 음악싱글들을 힛트시키며 1988년에 우리나라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영화 싱글들을 발매한 후에 A-Ha의 활동은 뜸해지게 되고 후속 앨범도 발매하지만 결국 이들은 1994년 실질적으로 해체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룹의 보컬이며 잘생긴 외모로 사랑을 받았던 모튼 하켓은 (Morten Harket)은 솔로 활동을 계속하게 되고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있었던 싱글곡 Take my eyes off you 를 힛트시키며 솔로가수로도 성공적인 가수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Paul은 그룹 <Savoy>를 결성하였으며 음악적 활동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으며 나머지 멤버인 Mags는 화가로 데뷔, 잠재돼 있던 미술가로서의 끼를 발산하며 국제적인 화가로 명성을 날리며 그를 사랑한 음악 팬들을 다시한번 놀라게 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들 그룹은 지금도 프로젝트 그룹처럼 활동하면서 새로운 앨범을 내고 있으며 이들 그룹의 재결성은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다.

3.팝 그룹들은 다른 뮤지션들처럼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룹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보이&걸 그룹'들을 보면 어느 정도는 그런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핫(팬들이 무서워서 H.O.T라고는 못쓴다)'의 강타가 작곡을 한다느니 뭐 그렇다고 해서 강타를 뮤지션이라 말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데뷔 당시 팝을 노래하는 노르웨이의 음유시인이라는 평을 받았던 '아하'도 그런 평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만은 않았다. 사실 처음으로 발매됐던 싱글 <Take On Me>의 판매율은 저조했었고, 이들의 성공에는 앨런 타니의 프로듀서로 다시 녹음된 <Take On Me>와 함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과 실사가 합해진' 영악한 뮤직 비디오의 힘이 그야말로 눈부시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야 어찌 됐든 이들이 가졌던 눈부신 팝의 감수성은 많은 밴드 생활을 거치는 과정을 지나 1982년 결성된 '아하'로 낙찰된 것이기 때문에 '아하'라는 밴드를 음악과 분리시켜 말할 수는 없다.

더우기 일단 그 외모로 온 세계의 여학생들의 찬사와 흠모를 한 몸에 받았던 프론트 맨 모튼 '호르텐 포르텐 스노르텐' 하켓의 곁에는 팝적인 능력을 겸비하고 있던 그의 친구들인 폴 왁타와 맥스 프루홀맨이 있었고, 1985년 이들의 (1980년 후반 이들 세대의 송가가 되어버린) 최고 히트곡 <Take On Me>의 여파로 인해 국내에서는 팝 음악을 듣던 세대 -특히 여학생들에게 있어서- 를 아하 이전의 듀란 듀란 세대와 아하를 듣는 세대로 구분하는 경계가 만들어질 정도였다(적어도 잠실에서는 그랬다. 중학생들은 아하, 고등학생들은 듀란 듀란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The Sun Always Shines On TV>, <Hunting High And Low> 까지 세계적으로 2천만 장이 팔렸다는 이들의 데뷔 앨범은 이들이 단순히 '새로운 영상'이라는 이슈와 함께 등장한 반짝 밴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1993년 밴드의 해체 이후의 이들의 개인적인 음악 활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밴드 해체 후 제각각 나름의 음악 활동을 하고는 있었음에도 -그 중에서도 1998년 모튼 하켓이 몰고 왔던 <Can't Take My Eyes Off You>가 만든 국내에서의 여파는 대단했다- 이들의 활동 무대가 노르웨이였기 때문에 영미권보다는 유럽권에서 활개를 쳤지만 아시아 한국에서는 모튼 하켓 외의 소식은 거의 들을 기회가 없었다.

보컬에 모튼 하켓(Morten Harket), 작사 작곡을 맡아하면서 기타를 담당한 폴 왁타(Pal Waaktaar) 팀의 막내이면서 키보드를 맡은 맥스 푸루홀맨(Mags Furuholmen). 이 세명의 노르웨이 청년들이 의기투합하여 도원결의. 아니 오슬로 결의를 한 후 영국땅을 밟은 것은 1982년이었다. 이들은 그 때 편도비행기표만으로 왔었다. 물론 돈이 부족해서 그랬겠지만 "성공하지 않고서는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호언장담하고 온 런던이었지만 세계 팝시장은 노르웨이의 순박한 세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었다. 음악적 성공을 갈망하던 이 세 청년들은 '펑크'로의 전환을 꾀하기도 하는데 첫 앨범 이후로의 그들의 모습은 단정. 핸섬 그 자체였지만 이때 그들은 모습은 정말 '펑크족 런던양아치(?)'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물이 가기 시작한 펑크는 소용이 없었다. 잠깐의 외도후 다시 제정신을 차린 셋은 결국 조금 더 고생고생하다가 (역시 돈이 부족해서) 한명만을 노르웨이로 눈물의 귀국을 시켜, 자금을 조달해오게 하였다. 그 때 가져온 종자돈이 행운을 가져왔는지. 1983년 12월 그들에게도 기회가 다가왔다. 듀란듀란, 케이트 부쉬등의 프로듀서를 담당했던 테리 슬레이터(Terry Sleighter)와 존 래트크리프(John Latcliff)의 도움으로 워너 브라더스 사와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 드디어 1984년 여름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인 토니 맨스필드(Tony Mansfield)와 앨런 터미(Alan Tamey)와 첫앨범(Hunting high and low)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첫앨범 수록곡은 10곡은 모두 그간 폴이 만들어 놓은 30여곡에서 선정한 것이었다. 첫싱글<Take on me>가 발매된 것은 1985년 7월 25일. 그러나 그들의 첫싱글에 '이것'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데뷔는 그저그런 수준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이것"-바로 그들의 그 유명했던 뮤직비디오이다. 당시 폭발적 기세로 뻗어나가던 M-TV와 함께 그들의 첫싱글 <Take on me>는 환상적 애니매이션 뮤직비디오로 전세계 팝 팬들을 사로잡고야 말았다. 앨범 제작과정을 지켜보면서 점점 이들에게 확신을 가지게 된 워너 레코드사는 '내친김에 팍팍 밀어주자'라는 결심후에 마이클 잭슨의 'Billy jean'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스티브 배런(Steve Barren)이 제작하고 프로패셔널 만화가 마이크 패더슨(Mike Patherson)을 기용. 아직까지도 진정한 의미의 뮤직비디오 선구자로 꼽히는 <Take on me>를 만들어낸것이다. 비디오. 오디오 양쪽의 엄청난 인기로 첫싱글이 발매된지 4개월만에 <Take on me>는 1985년 10월 19일자 빌보드 차트의 정상을 밟는 영광의 날을 차지했다. 첫앨범 <Hunting high and low>는 이외에도 <The sun always shines on TV>, <Train of thought>들이 히트 차트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들은 데뷔앨범의 대성공을 만끽하기도 전에 전세계를 도는 대규모 투어를 가졌다. 또한 이해 M-tv가 수여하는 '베스트 뉴 아티스트' '시청자투표 넘버원'등 7개 부문을 수상했다.

아하는 그들이 11,12살일 때 이미 잉태되었던 그룹이었다. 노르웨이의 한 마을에서 친구로 지내던 폴과 맥스는 어려서부터 장래의 희망을 팝스타로 꼽고 있었다. 두사람이 처음 자신들의 작품을 만든 것은 고등학교를 다닐때였다. 용돈을 털어서 데모테이프를 만든 그들은 그것을 갖고 여기저기를 기옷거렸다.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오슬로의 한 신문이 그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지만 '세계적인 스타가 되겠다" 고 한 말이 웃음거리가 되었을 뿐 첫 번째 시도는 좌절로 둘아갔다.

아무도 눈치를 체지는 못했지만 두소년은 정말로 큰 야심을 갖고 있었다. 정말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겠다'는 것은 그들의 진심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에는 노르웨이가 너무 좁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아바의 예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스웨덴 출신인 아바는 원래 스웨덴어로 노래를 불렀지만 한계를 느끼고는 영어로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그룹이 되었다. 아바의 예는 그들에게 바로 교과서였다.

폴과 맥스는 목표를 영국으로 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팝음악 시장은 물론 미국이었지만 미국은 그들에게 너무 멀고 낯선 나라였다. 영국은 같은 유럽에 속해 있는데다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무엇보다도 영국에서 성공하면 그대로 세계무대로 이어질만큼 영국 팝음악의 위력은 막강했던 것이다.

두 소년은 우선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그 다음엔 영어로 노래를 짓기 시작했으며 이윽고는 영국으로 건너갈 계획을 세웠다. 나이도 어리고 빈털터리인 두 소년이 영국에 건너가기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그들은 정신병원에 취직해서 부지런히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그들은 런던행 비행기표를 샀다. 왕복도 아닌 편도 티킷을 산 그들의 결심은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않으리'였다.

런던에 도착한 두 사람은 우선 작은 아파트를 빌어 짐을 풀었다. 그리고 이 완고한 도시의 뮤직 비즈니스맨들에게 어떻게 자신들의 음악을 선보일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달리 뽀죡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저 부딪쳐 보는 수밖에. 마음을 다잡아 먹은 폴과 맥스는 오슬로에서 녹음한 데모 테이프를 들고 이곳저곳 레코드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도 북유럽에서 건너온 두 소년의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런던에만도 넘쳐날 정도로 많은 그룹들의 데모 테이프를 들어보기에도 이미 지쳐 있는지도 몰랐다.

히스로 공항에 도착할 때 '희망'의 모습이었던 런던의 하늘이 이미 그때 쯤은 잿빛 '절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잿빛 절망에 스러져 버리기에는 그들의 야심이 너무 컸다. 자신들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한 끝에 두 사람은 '노래'에 헛점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다음 할 일은 보컬리스트를 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런던은 여전히 '정복할 수 없는 성'이었다. 런던에 있는 많은 클럽을 돌아다니며 보컬리스트를 찾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하긴 오슬로에서 온 풋나기 두 소년의 제의에 선뜻 응할 만한 모험적인(?) 싱어가 런던에 있을리도 없었다.

참담한 기분으로 두 사람은 오슬로 행 비행기표를 끊어야 했다.
(* 다른 잡지에 따르면 두사람이 처음으로 영국에 간 것은 82년이며,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1600km 의 거리를 무전여행 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오슬로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보컬리스트를 찾았다. 그때 그들앞에 나타난 것이 모튼 하켓이었다. 그는 폴과 맥스를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그들의 연주를 한번 듣고는 언젠가 함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할 것을 제의했으니 모튼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세사람으로 불어난 그들은 1983년 초 또다시 런던으로 건너갔다. 런던에서의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전과 달라진 것이라고는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 뿐이었다.
그들이 얻은 아파트에는 침대가 둘밖에 없었기 때문에 번갈아 가며 한 사람은 매트리스를 깔고 바닥에서 자야했다. 게다가 전원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욕실을 사용할 때는 다른 전기 제품의 사용을 일체 중단해야 했다.
일단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세 사람은 우선 술집에 나가 한시간에 1파운드씩 받는 웨이터일을 시작했다.

("아무도 우리들을 거들떠 보려고 하지 않았다" 라고 모튼은 그 당시의 상황을 말했다.

"우리들이 노르웨이에서 왔다고 말했더니 상대는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때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당시 우리들에게는 실험테이프 제작비며 전화비 조차도 없는 형편이어서 셋이 어두운 방구석에 앉아 한숨만 쉬었었다"

"그 당시는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만 나면 몸이 떨리곤 했다. 틀림없이 경찰이 불법체류자라고 우리들을 체포하러 온 것이 아닌가하고" )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간이 날때마다 곡을 만들고, 연습을 하며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런던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는 그들이 레코드 업계에 자신들을 소개하는 방법은 역시 데모테이프밖에 없었다. 근근히 돈을 모은 그들은 오리지널을 30곡쯤 담은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레코드 회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무렵 그렇게도 굳게 닫혀있던 런던 팝스계의 문이 아하에게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처음 기회가 다가온 것은 런던의 한 스튜디오에서 세션을 하고 있을때였다. 마침 그곳에 들렀던 존 래드클래프라는 매니저가 그들의 음악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존 래드클리프는 테리 슬레이터라는 사람에게 세 사람을 소개했다. 테리 슬레이터는 이전에 EMI 레코드사의 부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테리 슬레이터는 아하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 완전히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테리가 처음 한 일은 존 래드클리프와 함께 아하를 위한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한 것이었다. 신인가수나 그룹은 대개 기존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테리가 아하만을 위한 회사를 새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아하의 가능성을 크게 보았다는 증거인 셈이다.

매니지먼트 회사가 설립된 뒤 아하는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들은 'Take on me'를 내놓았지만...반응이 없었다. "그건 멍청한 출반이었죠. 타이밍이 틀렸다구요"라고 맥스는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레코드사를 설득해 다시 출반해 보았지만...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무반응. 그들은 포기하는 대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아주 훌륭한 비디오라고 회사를 설득했다. - 다른 기사에서 발췌)

아하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운은 그들이 유능한 매니저들에게 발탁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존 래드클래프와 테리 슬레이터는 평범해 보이는 아하의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비디오에서 찾아냈다.

그들은 비디오의 제작자로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을 감독한 스티브 배런을 선택했다. 그리고 스티브 배런은 'Take on me' 의 비디오에서 만화영화의 기교를 도입한 획기적인 화면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들의 선택이 정확한 것이었음을 입증했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화제 속에 방영된 이 비디오 덕분에 아하는 보다 쉽게 스타덤에 올라 설 수 있었다.

(인구 4백만의 모국 노르웨이에서 데뷔 앨범이 2백만매 팔렸으며, 싱글 '테이크 온미'는 불과 4개월만에 미국의 히트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아하는 미국의 차트에 들어간 노르웨이의 첫 밴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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